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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로픽이 자체 AI 칩에 뛰어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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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를 만드는 앤트로픽이 자체 AI 반도체 설계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지난 8월 5일, 회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아우르는 엔지니어를 모집하는 채용 공고를 통해 커스텀 실리콘 팀을 꾸리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엔비디아 GPU를 빌려 쓰는 임차인에서 벗어나 스스로 설계도를 그리는 회사로 방향을 틀겠다는 신호다. AI 모델 개발사가 반도체까지 직접 만든다는 소식은 이제 새롭지 않지만, '안전한 AI'를 앞세워 온 앤트로픽이 이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은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왜 지금, 앤트로픽은 반도체에 손을 대나

앤트로픽이 낸 채용 공고를 보면 이번 결정의 무게가 드러난다. 회사는 반도체 설계와 검증 전 과정에 걸친 전문성을 갖춘 엔지니어를 찾고 있으며, 제시된 연봉 범위는 32만 달러에서 48만5000달러, 우리 돈으로 약 4억4000만 원에서 6억6000만 원에 이른다.
이는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시니어 반도체 엔지니어 몸값과 맞먹는 수준으로, 앤트로픽이 이 조직을 곁가지 프로젝트가 아니라 회사의 핵심 인프라 전략으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채용 공고에는 "반도체 설계를 실제로 완성하고 양산까지 이끈 직접적인 개인 기여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명시돼 있다. 단순히 설계 이론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칩을 완성해 본 경험자를 원한다는 뜻이다.
회사는 또 양산 일정을 다뤄 본 경험과, 상황에 따라 독립적으로 고위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역량을 요구했다.
이는 앤트로픽이 단순한 연구 단계가 아니라 실제 양산까지 내다보고 팀을 꾸리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스택 전반에 걸친 깊은 전문성을 갖춘 엔지니어들이 하드웨어와 AI 모델을 함께 설계하게 될 것" - 앤트로픽 채용 공고 中

표면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클로드를 쓰는 사용자와 기업 고객이 빠르게 늘면서, 추론과 학습에 드는 연산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엔비디아 GPU는 여전히 최고 성능을 자랑하지만 공급이 달리고 가격이 비싸다.
자체 칩을 확보하면 특정 워크로드에 맞춰 전력 효율과 비용 구조를 최적화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특정 공급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협상력도 얻게 된다. 다만 회사는 이번 칩 개발이 언제 결실을 볼지, 실제 양산을 누구와 함께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않았다.

실리콘밸리를 넘어, 삼성과 마주 앉은 앤트로픽

이번 발표에 앞서 지난 7월, 정보기술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앤트로픽이 삼성전자와 반도체 위탁생산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두 회사가 실제로 어떤 형태의 협력을 맺을지, 칩의 용도와 성능, 앤트로픽 서버에서 맡을 역할까지 구체적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전해졌다. 그럼에도 이 보도는 업계에 즉각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메모리 반도체 강자인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사업에서 존재감을 넓히려는 시점에,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AI 기업의 커스텀 칩 생산을 맡게 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은 이미 아마존웹서비스(AWS), 구글, 엔비디아, AMD와 인프라 계약을 맺고 이들의 컴퓨팅 자원을 빌려 쓰고 있다.
회사는 이번 발표에서도 이들 기존 파트너와의 관계를 끊을 계획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자체 칩은 기존 인프라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쌓인 컴퓨팅 자원 위에 새로운 한 겹을 더하는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앤트로픽은 지난해 아마존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트레이니움 기반 인프라 확장에 합의했고, 구글과도 TPU 공급을 둘러싼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삼성과의 만남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만약 협력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다면,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고객사 명단에 세계 최상위 AI 모델 기업을 추가하게 된다.
이는 대만 TSMC가 사실상 독점해 온 첨단 AI 칩 위탁생산 시장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사건이다.
동시에 앤트로픽 입장에서는 미국 서해안이 아닌 동아시아의 생산 역량을 확보함으로써 지정학적 리스크를 분산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논의 단계일 뿐, 정식 계약이나 구체적 일정이 공개된 바는 없다는 점을 함께 짚어둘 필요가 있다.


이미 뜨거운 자체 칩 전쟁, 앤트로픽은 후발주자다

사실 자체 AI 칩을 만드는 흐름에서 앤트로픽은 가장 늦게 뛰어든 축에 속한다.
구글은 이미 여러 세대를 거친 TPU로 자사 검색과 제미나이 모델을 구동하고 있고, 아마존은 트레이니움 칩을 100만 개 이상 배치했다고 밝히며 이를 수십억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키우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이아 칩을, 메타는 MTIA를 각각 자체 데이터센터에 투입 중이다. 심지어 앤트로픽의 최대 경쟁자인 오픈AI조차 지난해 10월 브로드컴과 손잡고 10기가와트 규모의 커스텀 가속기 공급 계약을 맺었으며, 3나노와 2나노 공정을 활용한 첫 결과물을 올해 하반기부터 순차 투입할 예정이다.

이 경쟁의 뒤편에는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브로드컴이 있다. 브로드컴은 구글의 TPU, 메타의 MTIA,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아, 그리고 오픈AI의 '타이탄' 프로젝트까지 도맡아 설계를 지원하며, AI 서버용 컴퓨팅 ASIC 설계 협력 시장에서 약 60%에 이르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앤트로픽이 삼성을 파트너로 검토하는 배경에는, 이미 브로드컴을 선점한 경쟁사들과 다른 노선을 택해 차별화를 노리려는 계산이 깔려 있을 가능성도 있다.

  • 구글 TPU - 자체 검색·제미나이 모델 구동, 여러 세대에 걸쳐 고도화
  • 아마존 트레이니움 - 100만 개 이상 배치, 차세대 트레이니움4는 2026년 말~2027년 초 출시 목표
  • 마이크로소프트 마이아·메타 MTIA - 자사 데이터센터 전용 추론·학습 가속기
  • 오픈AI 타이탄 - 브로드컴과 10기가와트 규모 계약, 3나노·2나노 공정 활용

시장 조사기관들은 ASIC 기반 AI 서버 출하량이 2026년 전체 AI 서버 시장의 27.8%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이는 전년 대비 44.6%나 증가한 수치다.  엔비디아는 여전히 AI 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쥐고 있는 절대 강자이지만, 구글과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가 잇달아 자체 칩에 투자하면서 그 점유율은 조금씩 잠식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앤트로픽의 합류는 이 흐름에 올라탄 여섯 번째 주요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클로드의 미래, 그리고 남은 질문들

앤트로픽의 이번 결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안전'을 회사의 정체성으로 내세워 온 조직이 하드웨어까지 손을 뻗었다는 점이다. 회사는 그동안 모델의 정렬(alignment)과 위험 평가에 공을 들이며 오픈AI와는 다른 노선을 표방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모델뿐 아니라 그 모델이 돌아가는 물리적 기반까지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채용 공고에 담긴 "하드웨어와 AI 모델을 함께 설계한다"는 문구는, 향후 클로드의 성능과 안전성 확보 전략이 소프트웨어 차원을 넘어 반도체 설계 단계부터 시작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반도체 설계는 아이디어에서 실제 양산까지 통상 2~3년이 걸리는 긴 여정이며, 그 사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와 숙련된 인력이 필요하다. 앤트로픽이 삼성이든 다른 파운드리든 실제 위탁생산 계약을 맺더라도, 첫 결과물이 클로드 서비스에 실제로 투입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오픈AI나 구글처럼 이미 몇 세대에 걸친 경험을 쌓은 경쟁사들과 격차를 좁히는 일도 쉽지 않은 과제다.

그럼에도 이번 소식이 갖는 함의는 작지 않다. 이제 웬만한 규모의 AI 모델 기업이라면 소프트웨어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고, 결국 전력 효율과 연산 비용을 좌우하는 하드웨어까지 직접 설계하는 방향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클로드를 쓰는 개발자와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서비스 비용이 낮아지고 응답 속도가 개선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몇 달간 앤트로픽이 삼성과의 협력을 공식화하는지, 그리고 채용 중인 커스텀 실리콘 팀이 구체적인 설계 로드맵을 내놓는지가 이 이야기의 다음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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